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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운 상식

누리호 발사 성공. 대한민국 항공우주사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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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1일 한국형 로켓인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이로서 2013년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에 이어 2번째 성공입니다.

나로호와 누리호가 갖는 의미는 차이가 있습니다.
나로호는 러시아의 기술과 합작하여 성공했다는 것과 누리호는 순수 대한민국의 기술이 집약되어 만들어져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전세계는 한국의 빠른 성과에 놀라워합니다.
무엇보다 주목 받는것은 두 로켓의 발사횟수인데 합쳐서 단 5회만에, 특히 누리호는 단 2회만에 성공시켰다는것에 놀라워 하고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로켓의 발사성공은 쉬운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누리호 발사 성공은 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언제부터 항공우주사업을 시작했을까요?.
대한민국의 성장만큼이나 다이나믹한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로켓의 시작은

로켓은 제 2차 세계대전중 독일이 인명 살살용으로 개발에 성공했고 전쟁이 끝난후 소련이 로켓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우주로 발사해 성공하였고

(구글 이미지 참조, 세계최초의 우주 발사체인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

뒤이어 미국이 머큐리 계획을 실행하고 아폴로 계획으로 달 착륙에 성공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2.한국 로켓 발전사

1). 군사정권시절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전쟁을 치룬후 의.식.주부터 해결해야겠기에 로켓은 말 그대로 먼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의존도를 줄이고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사일을 개발하였고 백곰이라는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로켓의 첫 성공사례입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백곰 미사일)

이후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였으나 80년초 미국의 눈치로 잠시 중단되었고 80년대 중반이후 다시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987년 항공우주 관련법이 제정되고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창설되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목적의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조치였다는게 당시 시각이었습니다.

2).김영삼 정부 시절

1994년 전 김영삼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무사히 방러를 마치고 돌아온 몇일후, 몇몇 대기업들이 대한민국과는 아무런 상관없어 보였던 항공우주 관련 부서를 잇따라 발족했습니다.
당시 삼성, 현대, 금성(지금의 LG),한화, 대한항공등이 관련사업을 시작한거 였습니다.
영문을 몰랐던 언론은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았는데 김 대통령이 로켓과 관련된 그 무엇을 러시아로부터 선물이나 구매를 통해서 얻었고 이에 정부 차원에서 관련 사업에 대한 부탁을 했을꺼라는게 추측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후인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을 발표합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첫 신호탄이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임기까지 정부의 지원아래 수월히 진행되던 사업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IMF가 온것이었습니다.

3). 김대중 정부 시절

IMF이후 사업은 난항을 겪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규모가 큰 사업이고 오랜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축소되거나 중지가 되어버립니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의 뜻을 이어받아 관련사업을 하던 기업들과 협의한후 통폐합하여 1999년 주식회사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창립합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이후 국방과학연구소, 방위사업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및 민간기업들과 면밀히 협조하여 기초적인 사업을 하고 있고 그 결과물로 Tㅡ50이라는 고등 전투 훈련기를 개발하고 생산하였고 현재는 한국형 전투기인 KFㅡ21을 제작중입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고등훈련 제트기 Tㅡ50)

그리고 마침내 2000년에 항공우주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장소인 우주센타 개발사업이 발표되고 지금의 나로우주센타가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4). 나로우주센터 건설완료 이후

나로우주센터가 건설되기까지 민.관.군의 긴밀한 협조 아래 로켓의 개발은 지속되어졌고 여기에 러시아 당국이 협조해주면서 개발속도는 한층 빨라졌습니다.
마침내 2009년 6월 나로우주센터가 완공되었습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나로 우주 센터 조감도)

2009년 8월 나로호가 첫 발사하였으나 실패하게 됩니다.
위안이라면 로켓 발사에 필요한 지상장비들이 이상없이 작동하고 고장이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년이 채 안된 2010년 6월 2차 발사도 아쉽게 실패합니다.
2013년 1월, 나로호가 안전하게 발사되어 우주로 향했고 내관에 안착되어 있던 인공위성의 통신이 무사히 송.수신되면서 완벽한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후 누리호가 순수 한국형으로 개발되고 2차 발사만에 성공하여 명실 상부한 항공우주개발국가에 속하게 됩니다.

1979년 미사일이라는 이름의 첫 로켓 발사 이후 43년만에 순수하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명칭으로 누리호를 발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오늘날의 성과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천천히 한발짝식 나아가 우주시대를 여는 강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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