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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운 상식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림자치 공화국의 역사, 관계, 그리고 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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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림의 관계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역사가 없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이 지역은 고대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메소포타미아,영화300으의 페르시아, 징키즈칸의 몽골제국, 이슬람세력의 최대 부흥기 오스만 투르크, 헝가리와 제정러시아, 구 소련의 영토였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고  우크라이나로 최초의 건국을 하였다.

1. 1921년 크림사회주의공화국(크림반도)의 건국.
     소련연방으로 편입됨.

2. 1954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니키타 흐르쇼프가   행정구역상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편입시킴.
예로 미국의 주와 주지사가 있듯이 크림반도의 관리를 맡김.

(구글 이미지 참조, 1954년 소련서기장인 니키타 흐르쇼프)

우크라이나는 과거의 이러한 사실로 크림반도가 본국이 소유한 영토라고 주장 하지만 공산주의였던 소련은 개인의 토지소유와 매매, 양도, 이양을 금지했기에 사실상 구소련.현러시아의 영토였음.
니키타 흐르쇼프가 70년대 실각하면서 말소됨.

3.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우크라이나와 크림사회주의공화국도 독립.
크림사회주의공화국은 크림자치공화국으로 명칭이 바뀜.
우크라이나에 의해서 크림은 강제로 합병됨.
크림에 대해서 자치권을 부여했었고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돌려줄것을 요구하나 묵살함.

4. 1991년 우크라이나와 크림자치공화국에서 대통령 직선제 실시.
우크라이나와 크림자치공화국의 대통령이 틀림.
크림의 1대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완전한 분리 독립을 원했고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차지하였으나 우크라이나와의 협약으로 파기됨.

5. 1996년 크림에 2대 대통령 취임.
1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완전독립을 추구 함.
우크라이나와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으나 러시아의 중재로 러.우. 크림의 삼각협약에 따라 크림은 자주권과 군사권 외교권을 획득함.

6. 2001년  크림의 대선이 미실시됨.
우크라이나가 일방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시키고 내각총리제를 실시함.
러와 크림이 반발하나 기실상 러시아는 관망함.
크림은 우크라이나의 속국이 됨.

7.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운동발생.
반러운동의 확산.
2004년 여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선에서 승리하나 부정투표가 있었음이 확인되어 재 투표를 실시 야당인 유센코가 대통령이 됨.
우크라이나는 친러와 반러, 복잡한 정국으로 혼란스러움.
크림에서는  이때부터 친러와 반러간의 소요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함.

8. 2010년 친러이자 야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이 됨.
하지만 2014년 각종 범죄사실이 들어나면서 탄핵되어 축출되고 러시아로 도망감.

9. 2014년 돈바스 내전이 발생함.
2014년 이전부터 돈바스 지역은 소규모적인 국지전이 발발했었음.
크림에서는 러시아에게 복속되는 투표를 실시 압도적으로 찬성표가 많아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일으킴.

10. 우크라이나가 2022년 나토가입을 공표하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킴.

흑해의 수난.
1. 1299년 오스만제국 건국.

2. 유럽의 국가들과 전쟁.

3. 1400년대 러시아와 전쟁 시작.
당시 흑해와 크림반도 발칸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은 러시아에게 패퇴해서 흑해 이남으로 밀림.
흑해가 다시금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가서 동유럽이 점령당하면 서유럽도 위험해지기에 서유럽은 러시아를 지원하여 오스만 제국의 북진을 막음.
이 전쟁으로 러시아가 흑해의 영해가 되는것을 서유럽의 국가들은 인정함.
1800년대 중반까지 적용됨.

4. 1800년대 중반 러시아의 국력이 강성해지고 오히려 서유럽이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국, 프랑스, 오스만이 연합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음.
엎치락 뒤치락으로 행해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5. 독일과 오스만이 동맹을 맺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동맹을 맺음.
여기서 흑해가 완전히 러시아의 영해가 됨.
제2차 세계대전때 종전과 1950년대까지 유지함.

6. 1950년대 소련과 터키(지금의 튀르키에)가 흑해의 주도권을 두고 국지전이 발생.
소련이 다 이긴 찰나 영국이 터키와 동맹을 맺고  흑해를  남(터키해) 북(러시아해)로 양분함.

7. 1880년부터 석유가 흑해에 매장된것이 발견됨

8. 2000년 초반 터키가 흑해 남부에서 광구를 발견함.
터키는 2010년부터 석유시추를 성공시킴.

9. 이에 고무된 러시아 또한 미국과 함께 개발에 들어갔으나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이 발생하면서 무기한 연기됨.
계획대로라면 2011년부터 석유시추가 시작되었을 것임.

10. 우크라이나가 2010년도에 흑해에서 석유를 시추하겠다고 공표.
https://overseas.mofa.go.kr/ru-ko/brd/m_7341/view.do?seq=1087017&srchFr=&srchTo=&srchWord=&srchTp=&multi_itm_seq=0&itm_seq_1=0&itm_seq_2=0&company_cd=&company_nm=

우크라이나의 흑해 대륙붕 가스 개발 사업 추진 상세보기|경제 동향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o 무콜라 아자로프 우크라이나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서방 파트너인 이탈리아 Eni사 및 프랑스 EdF사와의 협력 하에 4 ~ 13조 입방미터 규모의 잠재 매장량을 보유한 흑해 대륙붕 가스 개발 사업(2

overseas.mofa.go.kr


11. 러시아측에선 반발함.

12. 2014년 돈바스 내전 발발과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복속으로 우크라이나도 흑해개발과 석유시추가 무기한 연기됨.

13.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공표를 함.
러.우 전쟁 시작됨.

14. 흑해와 인근 지역의 광물 매장량이 상당하다는 결론.
육지에서는 노천광산이 존재한다는것이 발표되기도 함.
또한 2013년  발표에 따르면 셰일자원의 1위 매장량을 가진 러시아가 서부지역에서 셰일자원을 발견했고 이 지역이 돈바스와 크림반도 지역임이 높다는 확률임.

결론
(주관적 입장)
러.우 전쟁은 단순한 영토전쟁이 아님.
자원확보 전쟁일 가능성이 큼.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흑해와 인근 육지에 대한 개발권을 포기하지 않는한 전쟁의 지속가능성은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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